
눈을 뜨면, 추상화처럼 여러 색채가 뒤섞인 광경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규칙성 없는 색의 혼합. 하지만 그것이 혼란을 함의하진 않는다. 오히려 여태 목도하지 못한 희망과 구원의 색에 가깝다. 그런 것을 누릴 자격이 나에게 있었던가. 귓가에 막연히 울린 음률은 환청이며, 위로 뻗어나가는 빛은 혼이 다하는 순간 뇌가 그려내는 환상이리라. 인간은 격렬한 아드레날린이 상영하는 영화를 관람하다 관객으로서 숨을 거둔다고 하지. 그러나 이런 종말이 내게 과연 어울리는가.
느릿하게 두 눈 깜빡이자 저 멀리에 다른 이의 형상이 보인다. 흰 노멀 슈트와 붉은 머리… 아무로……? 아무로! 응답을 잃은 음성이 흩어지고, 뻗은 손은 무엇을 기다리는 듯 홀로 너울거린다. 고함치는 음성이 맞은편에서 돌아오지만, 의미로 승격되지 못한 채 웅웅 울리기만 할 뿐이다. 뭐라고 하는 거지? 샤아……? 날 부르고 있나?
노란 빛줄기 하나가 가벼운 회오리를 그리며 주변을 넓게 맴돈다. 라라아……! 라라아! 그녀는 제 형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꼭 둘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듯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이다. 라라아, 이것이 너의 뜻인가. 이번에도 네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하고 죽는 것인가. 어쩌면 나를 여기 두고 아무로와 공명한 것인가……?
점차 다가오는 형체가 일렁이며 번져가는 시야에 들어온다. 눈 한 번 깜빡이면, 아무로의 밤하늘을 닮은 눈동자가 가깝다. 이렇게나 근거리에서 네 눈을 마주 본 적이 있었던가. 맑은 눈동자에 비치는 별들을 바라보며 일순간 숨을 삼켰다.
액시즈는 어떻게 됐지?
경로를 바꿨어. 나의 승리야.
결국 난 너를 이기지 못했구나. 이렇게 최후를 맞아야만 하는 것인가…….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떠오른다. 패배자의 자조다. 내 목숨은 아깝지 않았으나 넌 살아남아 후대의 영웅으로 남길 바랐다. 너는 누구보다 강력한 빛을 가진 자이니.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내심 위안이 된다.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느껴진다. 네가 무엇을 전하고 싶어하는지. 네게도 나의 사념이 들리겠지.
공명이란 이런 것이구나.
너를 내내 원망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너와 연결되고 싶었다
눈을 감으면, 뒤섞인 색채를 담은 별들이 저편으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