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명(https://silverywave.tistory.com/4), 섬광(https://silverywave.tistory.com/5)과 이어지는 외전입니다.
* 샤아와 아무로의 시점으로 나뉩니다.
* 폭력 묘사 주의

눈을 뜨면, 어지러운 하늘이 내 위로 쏟아지는 환상이 밀려든다.
흐릿한 시야가 점차 붉게 변한다. 카메라의 시점을 재조정하듯 세상이 다시 선명해지려는 찰나에, 일순간 강한 타격이 날아오며 모든 것이 흐트러진다. 이미 몇 번의 타격을 받아낸 탓에 눈앞이 물들어간다. 흐르는 피를 닦아내면 너의 검푸른 눈과 마주한다. .....그리고 또다시 습격해 오는 강렬한 사념.
「너를 보여줘.」
건담에 타지 않은 맨몸의 너에게 당하기만 할 정도로 어리석은 성정은 아니다. 내내 허무에 삼켜졌던 붉은 혜성의 호승심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또 한 번 날아드는 주먹을 막아내고 네 뺨에 일격을 날리자,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듯 조소를 띄우며 그대로 제압해 온다. 말을 듣지 않는 신체가 온통 삐걱댄다.
그래봤자 연방의 개에 불과한 주제에, ……
대학살을 저지르려 했던 놈이 말이 많네.
그러는 넌, 그 강한 힘을 가지곤 무엇을 했지?
모두의 염원을 모아 지구를 지켜냈지. 네 두 눈으로 봤잖아?
네가 뻗은 손에 숨통이 조여온다. 그 손을 떼어내려던 순간 무언가 섬뜩한 감각이 전신을 파고들었다.
아직도 어머니를 찾는 한심한 놈. 라라아를 죽인 건 그 사람을 전장에 끌고 온 너야.
……!
단번에 퓨즈가 끊어지며 금세 윤곽이 역전된다. 너의 목을 틀어쥔 손이 격렬히 요동한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중상을 입은 신체로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인지, 강한 힘을 주던 손의 뼈마디가 세게 눌리다 이내 한쪽으로 확 꺾인다. 고통에 신음하는 쇳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집요하게 좇는 네 눈에 담긴 것은, 겹겹이 누적된 슬픔을 뒤덮어 가는 희열.
검푸른 눈동자에 비치던 공명하는 별들이…… 다시금 일렁이는 것 같다.
***
무기도 뭣도 없는 결투는 한참 이어지다 끝내 소강상태로 끝났다. 마지막 순간 전신에 휘몰아치던 감정은 분노보단 환희에 가까웠다. 샤아가 내게 가진 마음의 원형을 끌어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것을 온전히 끄집어내어 폭발시킬 때, 그는 비로소 샤아 아즈나블이 된다.
샤아는 당분간 제대로 거동하지 못할 것이다. 몸이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마구 충격을 가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나는 나대로 체력을 많이 소모해 피로감이 몰려온다. 안면 여기저기 튄 피를 바닷물로 씻어내며 저만치에 쓰러진 샤아의 동향을 살폈다.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작게 날 뿐 특이점은 없다.
소리가 잦아들고 찾아온 정적에 의식을 맡긴다.
물결의 규칙적인 움직임이 자아내는 배경음만이 들렸다.
***
아무로 레이.
뭐지?
자네는 정말이지… 너무한 짓만 하는군.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내게 너무한 짓만 했지.
하하…….
불분명한 시간의 흐름이 여태 지속되는 세계에서 둘 다 지친 까닭인지 한동안 가라앉은 기류가 흘렀다. 앞으로는 이런 공기가 길게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샤아와 거리를 벌리면 바로 사념이 도달하는 것이 퍽 만족스럽다. 내면이 난도질당해 그 원형이 드러난 혜성은 이제 은폐된 재앙이 아닌, 선명히 파헤쳐진 인간으로 돌아왔다.
인간은 거대한 집단의 의지를 담은 그릇이 될 수도, 그 몸 하나를 초월한 관념이 될 수도 없다. 인체를 이탈한 관념을 다시 인체라는 빈약한 것, 드넓은 대지의 면적을 조금 차지할 뿐인 것으로 끌어내리는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완수하고 싶었다. 적어도 내 앞에 무너진 샤아 아즈나블은 그런 모습이 되었다. 본래 세계선에서는 결국 거대한 상징으로 남았을 테지만…….
「보기 좋게 패배했군.」
「......참을 수 없이 분하다.」
「그래도 결과는 바뀌지 않아.」
너도 해체되길 원했잖아.
멈춘 사념은 긍정의 함의를 담은 것이리라.
***
번쩍이는 꼬리별이 밤하늘 어딘가를 가르며 낙하한다. 익숙한 감각을 믿지 못해 눈을 비비자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분명히 발견했다. 환각도 착각도 아닌 광경을.
붉은 혜성……?
하얀 유성의 손아귀에 부서진 혜성은 같은 자리에 있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자 전역에 수놓인 별들이 빛을 내뿜는다.
「샤아.」
「…?」
「끔찍한 것을 본 것 같아.」
「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지.」
「역시 여긴 누군가의 악몽이 분명하군.」
「정말 그렇게 느끼나?」
「……」
모르겠다.
영문 모를 웃음이 작게 흘러나온다.
너는 여전히 조용하다.
完